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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에서 맛을 느끼는 부위

거의 모든 사람들이 혀의 부위에 따라 느끼는 맛이 다르다고 믿는다. 단맛은 혀끝, 쓴맛은 혀의 뒤쪽, 짠맛과 신맛은 혀의 옆부분에서 느낀다고 알고 있다. `혀의 지도`는 미각과 요리에 대한 대중서뿐만 아니라 의학 교과서에도 계속해서 실린다. 딱 하나 문제가 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는 D. P. 하니히Hanig 교수가 쓴 독일 생리학 교과서를 잘못 번역한 데서 비롯되었다. 교수는 아주 개인적인 실험을 통해 혀의 부위가 네 개의 기본적인 미각에 대해 살짝 더, 혹은 살짝 덜 민감하게 반응했다고 주장했다. 보다 신중하게 한 실험들을 통해 `살짝`은 `아주 살짝`인 것으로 드러났다(여러분도 소금과 설탕을 혀에 올려놓고 직접 실험해볼 수 있다). 하니히의 연구는 1901년에 책으로 나왔고, 발견된 사실을 대단히 과장하고 신화를 공고하게 만든 번역은 1942년 유명한 하버드 심리학자 에드윈 G.보링Edwin G. Boring이 맡아서 했다. 보링은 감각 인식의 선구자로, 우리에게는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아름다운 여성으로 보이기도 하고 노파로 보이기도 하는 애매한 그림으로 유명하다. 아마도 이런 보링의 명성이 부분적으로 영향을 미쳐서 혀의 지도는 사실로 굳어졌고, 실험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인용되면서 한 세기가 넘도록 고쳐지지 않고 있다.
- 이그노런스(스튜어트 파이어스타인 지음, 장호연 옮김, 뮤진트리 펴냄, 2017) 32쪽 - 33쪽에서 인용


저도 혀의 부위에 따라 느끼는 맛이 다르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이 글에 쓰인대로 요즈음의 의학 교과서에도 `혀의 부위에 따라 느끼는 맛이 다르다`고 되어있는지 궁금해서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찾아볼 수 있는 의학 교과서가 두 권 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나는 20여년 전에 나온 생리학 교과서(Guyton 9th Ed)입니다. 이 책의 미각 부분에는 혀의 부위에 따라 느끼는 맛이 다르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다른 하나는 8년전에 나온 내과학 교과서(Harrison 18th Ed)입니다. 여기에도 그런 내용은 없네요.

혹시 다른 책에는 어떻게 되어있는 지 아시는 분 계시나요?


좋은 말을 들으면 밥도 잘 상하지 않는다? 언론매체

가장 저열한 어리석음은 명백한 거짓에 대한 열렬한 믿음이다. 그리고 이것이 인류의 속성이다.
- H. L. 멘켄 H. L. Menken(Korea Skeptic vol.3 181쪽에서 재인용)

한 지상파 TV가 '말의 힘'이란 실험 다큐를 방송한 적이 있다. 갓 지은 쌀밥을 두 유리병에 나눠 담고 각 병에 '고맙습니다' '짜증 나!'라는 문구를 써 붙였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두 개의 병을 전달한 뒤 한 달 동안 '고맙습니다' 밥에는 칭찬의 말을, '짜증 나!' 밥에는 부정적 말을 들려줄 것을 주문했다.
4주 후 모든 병을 회수했더니 한눈에도 차이가 확연히 드러났다. '고맙습니다' 밥에는 군데군데 하얀 곰팡이가 생기고 누룩 냄새가 난 반면, '짜증 나!' 밥은 시커먼 곰팡이에 뒤덮인 채 썩어 버렸다. 참가자들은 "밥풀에 귀가 달린 것도 아닌데…"라며 놀라워했다. 이를 응용한 실험으로 일부 학교는 학생들에게 긍정적 언어의 힘을 깨우쳐 주기 위해 칭찬받는 고구마와 그렇지 않은 고구마의 생육실험을 종종 활용한다

2018년 5월 9일 동아일보에 실린 글입니다.
비슷한 글은 또 있습니다.

최근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된 일이 있습니다. 미국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사과 두 개를 놓고 아이들에게 한쪽 사과에게는 '미워, 나빠, 못생겼어' 같은 나쁜 말을 하고, 다른 쪽 사과에는 '사랑해, 예뻐' 같은 좋은 말을 해보라고 시켰습니다. 초등학교 아이들이니 당연히 선생님이 시키는대로 했지요. 그리고 나선 사과를 잘라보니 나쁜 말을 들은 사과는 속이 멍이 들어있었고, 좋은 말을 들은 사과는 아주 싱싱했다는 거지요. 그러면서 교사는 말했답니다. 사과 하나도 좋은 말을 들을 때와 나쁜 말을 들을 때 이렇게 차이가 나는데 사람은 더하지 않겠냐. 서로서로에게 좋은 말 고운 말을 하도록 하자. 그런데 사실 교사가 나쁜 말 사과를 일부러 쳐서 멍이 들도록 만들었다는 게 나중에 밝혀졌습니다.

과학이라는 헛소리 : 욕심이 만들어낸 괴물, 유사과학(박재용 지음. MIB 간. 2018) 174쪽부터 175쪽에 실린 내용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것 같지 않은 물, 쌀밥, 고구마, 사과, 양파와 같은 물체가 사람의 말과 감정에 반응한다는 주장은 '물은 답을 알고 있다'는 책을 쓴 일본인 에모토 마사루江本勝가 처음 시작했다고 합니다. 사람에게 좋은 말을 들은 물을 얼리면 보기 좋은 결정을 이루고, 쌀밥은 오래 두어도 잘 상하지 않는다는 식이죠.

이런 류의 주장 중에 좋은 말을 들은 쌀은 잘 상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실험결과가 있어 소개합니다. 실험방법으로 무작위 맹검법을 사용했는데 22쌍의 용기에 쌀을 담아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각 쌍 중 하나에는 긍정적인 말을, 다른 하나에게는 부정적인 말을 반복하고 2주후에 결과를 보았더니 부정적인 말을 들은 쌀이 더 썩은 경우는 7쌍, 긍정적인 말을 들은 쌀이 더 많이 썩은 경우는 15쌍이었습니다. 흔히 알려진 것과는 반대되는 결과입니다.

실험을 소개한 사람들은 흔한 예상과는 달리 '쌀에게 좋은 말을 해주면 더 잘 썩는다'고 결론내리지 않았습니다. 실험에 사용한 쌀이 피학적인 성향이 있을 가능성, 생명을 잃은 쌀이 아닌 생명체인 박테리아가 긍정적 메시지를 받아들여 왕성하게 증식했을 가능성 등 다른 해석도 있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실험의 결과가 통계적으로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으면서 쌀이 인간의 말과 감정에 영향을 받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합니다. (이 실험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은 분은 Korea Skeptic vol3. 50쪽에서 55쪽에 걸쳐 실린 '물을 답을 알고 있다?'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실험방법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좋은 말을 들은 쌀밥은 잘 상하지 않는다'는 식의 말을 믿는 사람도 유명 언론사의 논설위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새삼스러워 맨 앞에 소개한 동아일보의 기사를 링크합니다.
http://news.donga.com/3/all/20180509/89986916/1

처음 올린 날 : 2019-3-15

화투의 유래에 대한 글을 읽다가

현재의 화투는 일본에서 19세기 초에 완성되어 19세기 말에 대마도(對馬島) 상인을 통해 부산에 전파된 것을 알려져 있다. 물론 이 화투가 본격적으로 한국에 도입된 것은 1940년대 이후라고 한다. 일본의 대륙 침략 정책과 때를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제(日帝)는 침략 정책의 일환으로 한국과 중국에 화투를 교묘히 침투시켰다고 한다. 특히 군대 내에 퍼뜨렸는데, 그 이유는 강제 징용되거나 군속(軍屬)으로 참여한 한국인들이 제대하여 이 노름을 전국에 퍼뜨리게 하기 위해서였다. '화투'을 퍼뜨리고자 한 이유는 뻔하다. 한국 국민 모두를 노름꾼으로 만들어 정신적 무장 해제를 시키고자 했기 때문이다. 실제 이 정책이 먹혀들어가 어느 순간 삽시간에 '화투'가 전국에 퍼져 나갔으며, 그에 따라 우리의 가정 경제는 멍들고 정신 세계는 점점 피폐해졌다. 그 폐해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 정말 궁금한 우리말 100가지 2(조항범 지음. 예담 간. 2004)159쪽에서 인용

일제가 한국에 화투를 퍼뜨리기 위하여 일본 군대에 화투를  퍼뜨렸다는 것이 사실일까? 만약 그렇다면 (일본 군대에서 화투를 배운 한국인 징용자나 군속이 제대해서 한국에 화투를 퍼뜨리는 것을 노렸다면) 군대에서 화투를 배운 일본인 군인이나 군속의 수가 훨씬 많았을 텐데 일제는 그들이 제대해서 일본에 화투를 퍼뜨리지 않으리라고 생각한 이유가 있었을까? 혹시 일본에는 이미 화투가 널리 퍼져 있어서 - 글쓴이의 표현대로라면 `가정 경제는 멍들고 정신 세계는 점점 피폐해`져서 - 더 퍼지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것일까?

글쓴이는 이 책에서 구체적인 자료와 근거를 바탕으로 우리말의 어원을 밝히고 있는데 일본이 의도적으로 한국에 화투를 퍼뜨렸다는 것을 뒷받침할만한 자료를 가지고 있는 걸까?

처음 올린 날 : 2019-3-11
마지막 고친 날 : 2019-3-15

하수오의 효능 건강

텔레비젼을 보면 약초를 캐는 사람들 이야기가 종종 나옵니다. 그럴 때 가끔 나오는 귀한 약초 중 하나가 하수오입니다. 흰 머리를 다시 검게 해주고 젊음을 되찾게 해주는, 즉 회춘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동의보감에도 하수오는 `오래 먹으면 머리를 검게 하고, 정과 골수를 늘려주며 오래 살고 늙지 않게 한다`고 적혀 있다 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인류는 2018년까지 나이 든 사람을 다시 젊게 해주거나 늙지 않게하는 쓸만한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2019년에는 어떨 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하수오가 그런 효과가 있다고 믿게 되었는지 참 궁금했습니다.

그런 믿음의 유래를 알 수 있는 글을 보게되어 소개해드립니다.

(하수오의 효과에 대한 이야기는 오래된 책에 쓰여있으면 무조건 믿는 것이 사람들을 얼마나 잘못된 길로 이끄는지 보여주는 사례인 것 같습니다.)

"당시의 철학자 이고(李翺)는 더 영리한 방법을 썼다. 그는 의학에 관련된 글을 썼다. 그리고 그 글 속에 유교를 개혁하기 위한 정치적 방안들을 숨겨놓았다. 사람들이 도교나 불교로 전향하는 것을 보면 유교에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그 무엇이 없음이 분명했다. 유교는 자연에 관심을 기울여본 일이 없었으며 인간관계의 도덕성만을 강조해왔다. 또한 유교에는 형이상학도, 따뜻한 이해도, 용서나 자비도 없었다. 불교는 이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이고는 자신의 글에서 사용하기 위하여 당시까지 본초서에 기재되지 않았던 식물을 하나 골랐으니, 바로 하수오(何首烏)였다. 나이 들어 생식능력이 없는 남자가 술에 취해 들판에서 잠이 들었다가 다음날 아침 깨어나 보니 생전 처음 보는 두 식물이 서로 줄기가 얽혀 있다. 비유로 점철된 이 이야기 속에는 생식불능의 술 취한 남자는 유교를 상징하고 두 식물은 각각 도교와 불교를 나타낸다. 그는 어떤 이의 충고로 이 약을 가루 내어 술에 타서 먹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아들을 얻는다. 이만하면 어떤가? 그는 삶을 되찾았다.

그러나 974년에 일부 의사들은 그 이야기 속에 숨은 뜻을 잃어버렸다. 그들은 액면 그대로 그 충고를 받아들여 본초서에 그 약제를 추가했다. 그때 이후로 중국의학에서 하수오는 회춘시키고 백발을 흑발로 만들어주는 중요한 약재로 간주되었다. 무엇보다도 이고는 유명한 철학자였다. 그가 권하는데 누가 믿지 않겠는가? 하수오의 효능의 타당성은 오늘날까지 중국의학에 남아있다."


* 의학이란 무엇인가(파울 U. 운슐트 지음. 홍세영 옮김. 궁리 간) 225 - 226쪽에서 옮김

처음 올린 날 : 2019-2-17
마지막 고친 날 : 2019-2-18

세계보건기구는 '건강의 정의'를 바꾸었는가? 건강

저는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을 '단순히 질병이나 결손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그리고 사회적으로 안녕한 상태를 말한다' 정의했다고 배웠습니다. 아마 'Health is a state of complete physical, mental, and social well-being and not merely the absence of disease or infirmity'를 번역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세계보건기구에서 건강의 정의에 영적인 요소를 추가했다'는 말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런 내용의 글도 자주 접하게 되었습니다. '건강이란 단순히 질병이나 결손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그리고 영적으로(spiritually) 안녕한 상태를 말한다'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비의료계 인사 뿐 아니라 의사들이 쓴 글 중에도 그런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연 세계보건기구가 '건강의 정의'를 바꾼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그것은 사실이 아닌 것 같습니다. 세계보건기구 홈페이지(www.who.int)에서 'Frequently asked questions(http://www.who.int/suggestions/faq/en/)'에는 내용이 다음과 같은 나옵니다.(2006년 11월 21일 방문. 2018년 11월 28일 재방문)

What is the WHO definition of health?

Health is a state of complete physical, mental and social well-being and not merely the absence of disease or infirmity. The bibliographic citation for this definition is: Preamble to the Constitution of the World Health Organization as adopted by the International Health Conference, New York, 19 June - 22 July 1946; signed on 22 July 1946 by the representatives of 61 States (Official Records of the World Health Organization, no. 2, p. 100) and entered into force on 7 April 1948. The definition has not been amended since 1948.


세계보건기구의 '건강의 정의'에는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을 뿐 '영적(spiritual)' 요소는 들어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글의 맨 마지막 부분에는 '이 정의는 1948년 이후 개정된 적이 없다(The definition has not been amended since 1948)'고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왜 세계보건기구에서 '건강의 정의'를 바꾸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일까요? 자료를 검색해보니 세계보건기구에서는 1998년에 '건강의 정의'를 바꾸려고 검토하였습니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는 '건강의 정의'를 개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보건복지부는 '세계보건기구가 개정을 의결했다'고 전했고 어느 신문에서 그것을 기사화하였습니다. 그 후 많은 사람들이 세계보건기구의 공식문서를 확인하지 않고 '세계보건기구에서 건강의 정의를 개정하였다'고 말하고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의 홈페이지에 의하면 2014년에 발행한 WHO 기본문서(Basic Documents 48th edition)에도 '건강의 정의'는 바뀌지 않았다고 되어있습니다(http://apps.who.int/gb/bd/PDF/bd48/basic-documents-48th-edition-en.pdf 2018년 11월 26일 방문).

'세계보건기구에서 건강의 정의에 영적인 요소를 포함시켰다'고 쓰시려는 분들께서는 세계보건기구의 홈페이지 내용을 확인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어떤 사실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야 큰 잘못이라 할 수 없겠지만 그것을 다른 사람들게 퍼뜨려 사람들을 오도하는 것은 좀 더 큰 잘못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쓰도록 조언해준 홍경표 학형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예전에 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던 박덕영님의 글(WHO건강개념에 영적건강 포함?? http://www.prevdent.or.kr/cgi-bin/board/board.cgi?id=ms&page=1&action=view&number=15.cgi&simple=yes)은 연결이 되지 않아 아쉽습니다.

처음 올린 날 ; 2006-11-21
마지막 고친 날 ; 2018-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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