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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밍의 페니실린 발견 건강

플레밍 부부의 노력에 힘입어 대중의 기억속에 남게 된 페니실린 발견을 둘러싼 낭만적인 일화에 따르면, 여름휴가에서 돌아와 우연히 약독화된 닭콜레라 배지를 발견하게 된 파스퇴르처럼, 어느 날 실험실에 돌아온 플레밍은 그의 배지 중 하나에서 세균이 자라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신비로운 이 일화 속에서 배지의 세균을 죽인 것이 무엇이든간에 상처 속의 세균을 죽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섬광처럼 플레밍의 머리를 스쳤고, 이 순간적 발상이 페니실린 발견으로 이어졌으며, 다른 사람들이 발견의 공로를 주장하였지만 우여곡절을 거쳐 마침내 정의가 승리하였다. 이것은 지미 스튜어트Jimmy Stewart가 주연을 맡은 사극의 줄거리이며, 실제상황은 이와 전혀 다르다.

페니실린 발견의 발단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거슬러올라가는데 당시 플레밍이 소속된 세인트메리 병원의 접종과는 볼로냐 지역의 전상-감염부대에 배속되어 프랑스로 이동하였다. 여기에서 부대원들은 군의관들이 리스터의 선례에 따라 독한 화학약품으로 창상 속의 감염성 미생물을 제거하고자 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부상에 의한 인명손실보다 창상감염에 의한 인명손실이 더 큰 현실 속에서 군의관들은 전상치료에 가능한 한 과학적 이론을 도입하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그러나 라이트는 독한 화학약품이 오히려 면역 기능을 담당하는 탐식세포를 죽인다고 믿었다. 따라서 독한 약품 치료는 창상감염에 의한 생명와 팔다리의 손실을 줄이기는커녕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했다. 그와 동료들은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탐식세포를 자극'하는 백신을 개발해야 한다는 확신을 더욱 굳게 품고 전쟁터에서 돌아왔다. 이때부터 창상과 감염의 치료를 위한 덜 가혹한 방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플레밍의 머릿속에 자리잡게 되었다.

발견과정을 가장 사실에 가깝게 재구성하자면, 페니실린은 좀처럼 일어나기 힘든 거짓말 같은 두 개 사건의 동시적 발생에 의해 발견되었다. 플레밍은 세균학 백과사전에 실을 포도상구균에 관한 글을 청탁받고, 힘이 닿는 한 되도록 많은 균주와 변종을 수집하기 시작하였다. 포도상구균의 색소생산 목록을 작성하여 색소와 병원성 사이에 관련성이 있는지를 밝히려는 것이 그의 의도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대부분의 인체 감염세균과 마찬가지로 포도상구균은 섭씨 37도(체온)에서 자라지만 색소는 실온(섭씨 20도 안팎)에서 세균이 증식을 멈춘 후에 생산된다. 플레밍의 실험실 벤치에는 수많은 배지가 쌓여있었지만 그것들은 버리기가 아까워 쌓아둔 것도 아니고 배양하기 전에 다시 닦아 사용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색소가 생산되는 것을 관찰하기 위해 배지를 실온에 방치해두었던 것이다. 배지 위에 자란 세균을 관찰할 때면 그는 종종 눈을 크게 뜨고 배지를 들여다보아야 했으며, 세균학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이런 경우 한두 번은 공중에 떠돌던 곰팡이가 배지 위에 내려앉을 가능성이 있었다. 이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므로 그의 배지 중 오염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면 그것이야말로 놀라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플레밍은 배지 하나에 곰팡이가 자라 있고 곰팡이 주위 몇 밀리미터 범위에 세균이 자라지 않은 투명한 구역이 형성된 것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목욕탕서 "유레카!"를 외치며 뛰어나온 아르키메데스와는 달리, 플레밍은 비교적 차분하게 이변을 관찰하면서 자신이 일종의 효소인 리소자임lysozyme의 또 다른 예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당시까지 플레밍이 해낸 과학적 발견은 리소자임뿐이었기 때문에, 그의 머릿속에는 그것이 먼저 떠올랐다. 리소자임은 세균과 그 외의 생물체가 생산하는 효소로서 세균의 용해나 분해를 일으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플레밍과 라이트는 리소자임이 세균 감염에 치료적 가치를 가질 것이라고 기대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리소자임은 배지나 시험관의 세균에는 효과가 있지만, 실험동물에서는 아무 효과가 없어 두 사람은 크게 실망하고 있던 참이다. 사정이 이러했으니 플레밍이 배지에 자란 곰팡이 주변의 세균에 용해가 일어난 것을 보고 또 다른 종류의 리소자임을 발견했다고 생각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그는 이미 오랜 세월 동안 리소자임을 생산하리라고 기대되는 수많은 생물체를 테스트해보면서 거의 대부분의 생물체에서 리소자임을 확인할 수 있었으므로 이 발견은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곰팡이를 순수배지에 분리하여 그것이 리소자임을 생산하는 지를 확인하는 실험을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곰팡이는 리소자임을 생산하지 않았다. 그는 뭔가 새로운 항세균 인자를 발견한 것이다. 비로소 호기심이 발동된 그는 아래층에 사는 곰팡이학자(아마도 배지를 감염시킨 곰팡이의 출처였을 것으로 짐작되는)에게 곰팡이의 종을 확인해달라고 의뢰했다. 그러자 그것은 가장 흔한 종류의 곰팡이로서 빵에서 자라는 페니실리움Penicillium이라는 대답이 왔다. 플레밍은 페니실리움에서 나오는 물질이 페트리 디시의 한천을 통해 퍼져서 세균을 죽이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 물질을 페니실린penicillin이라고 명명하였고, 자신이  독자적으로 붙인 이 이름을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사실 리소자임을 발견했을 때 부당하게도 라이트가 그 이름을 결정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일화의 어느 부분이 기적 같은 일인가? 페니실린을 생산하는 곰팡이는 실온(섭씨 20도)에서 자라지만, 세균은 정상체온(섭씨 37도)에서 증식한다. 공중에 떠돌던 곰팡이가 배지에 내려앉은 것은 세균이 37도에서 증식한 이후라는 말이다. 여기까지는 하나도 이상한 것이 없지만 문제는 곰팡이가 생산한 페니실린이 세균이 증식한 이후에 세균을 죽였다는 데에 있다. 플레밍이 포도상구균을 포함한 다양한 균주를 대상으로 곰팡이의 살균능력을 실험해본 바로는 곰팡이는 증식하고 있는 세균에만 효과가 있었고, 이미 증식한 세균을 배지에 옮겨놓고 실험했을 때에는 살균효과가 별로 없었다. 그렇다면 곰팡이가 죽인 원래의 포도상구균은 증식을 마친 후에도 페니실린에 의해 죽는 드문 변종이라는 것이 된다. 플레밍의 원래의 배지는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이같은 추론이 사실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후일 사람들이 일부러 그런 변종을 찾아본 바에 의하며 그런 변종을 만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거짓말 같은 두 번째 일은 변종 포도상구균이 자라고 있는 배지에 정착한 그 페니실리움이 다량의 페니실린을 생산해냈다는 점이다. 후일 플레밍이 그의 손이 미치는 모든 페니실리움 곰팡이를 수집하여 실험해본 결과 어느 것도 그렇게 많은 항세균 효과를 보여주지는 않았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지만, 증식하지 않을 때에도 용해되는 희귀한 변종세균이 자라고 있는 배지에 다량의 페니실린을 생산하는 희귀한 페니실리움 곰팡이가 오염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제아무리 명배우인 스튜어트라 할지라도 이같은 사건을 그럴듯하게 연기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또 한 가지 거짓말 같은 일이 여기에 덧붙여진다. 몇 차례 페니실린의 치료효과를 시험해본 플레밍이 곧바로 실험을 포기해버린 것이다. 전상치료의 경험이나 독한 화학약품 치료에 대한 거부감, 리소자임에 기대했던 생물학적 창상치료효과의 실패 경험들을 고려한다면, 플레밍이 새로운 항세균물질을 통해서 성병은 물론 포도상구균이나 연쇄상구균 감염에 의해 야기되는 엄청난 임상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을 것을 기대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발견한 페니실린의 가장 유용한 용도는 많은 이익을 올리고 있는 세인트메리 병원의 접종과에서 사용할 백신을 만들기 위해 환자로부터 채취한 세균의 혼합배지에서 포도상구균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포도상구균을 빨리 제거할수록 백신 생산을 위해 순수배양을 해야 하는 다른 미생물을 더 쉽게 분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32년 플레밍은 "페니실린을 무활동성의 부패성 창상에 사용해본 결과 강한 화학약품으로 처치하는 것보다 뛰어나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페니실린의 활용에 관해 언급하였다. 이것은 새로운 항생제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외침이라기보다는 독한 소독약을 사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빈정거림에 가까운 말이다. 그가 1941년과 1945년에도 이와 별로 다를 바 없는 말을 반복하고 있는 것을 보면,  페니실린을 치료제로 사용하기 위한 진전된 시도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1945년의 강연에서 그는 "우리는 그것을 시험적으로 오래된 누공에 몇 차례 사용해보았는데, 결과는 양호했지만 놀랄 만큼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에 대한 숭배심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한 전기작가는 이렇게 썼다. "페니실린에 관한 플레밍의 초기 작업을 전해주는 유일한 기록들에는 플레밍 본인이나 그의 청중인 임상가들 중 어느 쪽의 심대한 노력이나 열정도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어느 쪽도 치료제로서의 페니실린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 의학의 과학적 한계(에드워드 골럽 지음. 예병일 외 옮김. 몸과마음 간. 2001) 282쪽 - 287쪽

플레밍은 미생물학자였다. 그는 '페트리 접시'라고 불리우는 특수한 접시에 박테리아 집락colony을 키우고, 여러 다른 상황에서 박테리아의 반응을 관찰하며 연구했다. 이런 연구를 통해 그는 그로부터 얼마 전 눈물에서 발견한 리소자임lysozyme이라는 화학물질이 무해한 몇몇 박테리아 종의 성장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었다.

1928년 여름휴가에서 돌아온 플레밍은 세척해야할 페트리 접시들 중에서 하나를 집어들었다. 그는 그 접시에서 곰팡이(나중에 페니실리움 노타툼으로 알려지게 된다)가 포도상구균의 성장을 막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이 곰팡이(그는 이를 페니실린이라고 불렀다)의 추출액이 모든 미생물의 성장을 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리하여 다른 과학자들도 플레밍을 따라 포도상구균의 배양접시에 약간의 페니실리움 곰팡이를 떨어뜨려 놓는 일을 해보았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들은 플레밍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없었다.

플레밍의 조수로 일한 적이 있는 로널드 헤어Ronald Hare가 이 문제를  면밀히 조사한 것은 1964년이 되어서였다. 그가 그 이유를 밝혀냈다. 헤어는 플레밍이 보여준 원래의 관찰결과를 재현할 수 없었던 이유가, 포도상구균이 섭씨 35도 정도에서 가장 잘 자라는 반면 페니실린이 그와는 다른 온도(섭씨 20도)에서 성장하기 때문임을 알아냈다. 그러면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인가?

먼저, '창문을 통해 흘러들어온' 페니실리움 곰팡이는 흔히 생겨나는 균주菌株가 아니라 아래층의 실험실에서 공기를 타고 올라온 희귀한 균주였다. 아래층의 실험실에서는 동료 과학자이자 균류 전문가인 라투슈C. J. LaTouche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우연한 일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이 희귀한 균주가 다량의 페니실린을 만들어내게 된 것이다. 분명 일부 포자가 플레밍이 포도상구균을 배양하고 있던 페트리 접시에 흘러들어갔을 것이다. 플레밍을 휴가를 가기 전에 그 접시를 배양기 안에 놔두지 않고 실험실 안의 장의자 위에 놓아두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의 발견에는 이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로널드 헤어는 1928년 7월 말 런던기상학 자료를 살펴본 뒤, 플레밍이 휴가 중이던 9일 동안 예외적으로 날씨가 서늘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런 서늘한 날씨가 페니실리움 곰팡이의 성장에 이롭게 작용했고, 그 뒤 기온이 올라가면서 포도상구균의 성장이 촉진되었던 것임이 분명했다.

페니실리움 곰팡이는 이로써 충분한 양의 페니실린을 생산할 수 있었고, 마침 연구실로 돌아온 플레밍은 접시 위에 있는 머리핀 크기의 노란 점들(이 각각의 점들이 포도상구균의 집락이었다)이 기묘한 모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곰팡이 주위로 상당한 범위까지 군체들이 뚜렷하게 용해되어 있었다." 따라서 1928년 여름의 런던에 '서늘한 9일'이 없었다면 플레밍은 결코 페니실린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 현대의학의 역사(제임스 르 파누 저. 조윤정 역. 아침이슬 간. 2005) 29쪽 - 30쪽

1928년 여름 휴가를 떠나기 전 플레밍은 포도상구균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그는 문헌에 발표된 애매한 내용을 분명히 할 생각으로 몇 종류의 균주를 배양하여 실험했다. 그리고 배양접시를 그대로 시험대 구석에 몰아둔 채 휴가를 떠났다.

당시에 바로 아래층 실험실에서는 곰팡이 알레르기를 치료할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 실험실의 곰팡이 하나가 플레밍의 연구실 창문을 넘어와 배양접시를 오염시켰다. 마침 날씨가 무덥지 않았으므로 곰팡이는 잘 자라 나중에 페니실린으로 밝혀진 물질을 많이 만들었다. 그러나 다시 날씨가 무더워졌으므로 이제는 박테리아가 잘 자랐다. 9월 3일, 휴가에서 돌아온 플레밍은 배양접시를 세척하기 위해서 소독제 속에 넣다가 우연히 오염된 곰팡이 주위의 박테리아가 죽어있는 반점을 발견했다.

… 중략…

플레밍은 미생물학자였다. 그는 배양접시의 오염된 곰팡이를 따서 플라스크에 넣어 배양했다. 이미 그 곰팡이가 페니실륨속(屬)에 속한다는 것을 알고 추출물이 담긴 플라스크에 페니실린이라고 적어놓았다. 실제로 이 플레밍의 곰팡이가 페니실륨 노타툼(Penicillium notatum)이라는 것을 확인한 사람은 1929년 미국 미생물학자 찰스 톰이다.

… 중략…

플레밍은 1929년 2월 13일 성 메리 병원 세미나에서 페니실린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페니실린이 아마도 접종과에서 생산하던 파이퍼균 백신을 제조할 때 포도상구균의 오염을 제거하는데 사용 가능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을 뿐이었다. 1929년 5월 논문이 발표되었으나 이미 곰팡이 배양액이 항균력을 나타낸다는 사실은, 앞에 기술한 대로 드물기는 하나 문헌에 없었던 사실은 아니므로 그다지 관심을 끌지 못했다.

* 이야기 현대약 발견사(강건일 저. 까치글방 간. 1997) 351쪽 - 353쪽

플레밍이 1928년에-그러니까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기 10여 년 전에-페니실린의 원료인 곰팡이를 관찰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첫째, 당시 그는 그가 관찰한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정반대로 그는 훗날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그 곰팡이의 이름조차 몰랐다. 둘째, 그는 그 '발견' 이후에 페니실린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정반대로 그의 출판물들은 다른 물질들이 훌륭한 항생제로 기능할 것이라는 믿음만을 담고 있다.

숱한 생명을 구한 페니실린을 발견하거나 환자에게 투여할 수 있게 만든 사람은 알렉산더 플레밍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면 때때로 시큰둥한 반응이 돌아온다. 특히 우연의 역할에 대하여 열광적으로 떠벌이는 사람들이 동요하고 화를 낸다. 플레밍처럼 준비된 정신을 만날 때 우연은 산파의 노릇을 한다고 강조하는 사람들 말이다. 또한 그 영국 의사가 자신의 발견에 대하여 늘어놓은 이야기는 널리 퍼뜨리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인기 있고 널리 퍼진-심지어 교과서에도 나오는-플레밍의 묘사에 따르면, 그는 접시 위에서 박테리아를 키우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맑은 저녁에 그의 실험실의 열린 창으로 곰팡이가 날아들어와 박테리아 옆에 내려앉았다. 그런데 그 곰팡이는 맨눈으로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박테리아의 성장을 막았다. 그것은 항생제의 발견이었다. 훌륭한 관찰자인 플레밍은 노벨상을 받고 국민의 영웅이 되는 길로 접어들었다.

곰팡이 포자가 날아들었다는 이 이야기는 수십 년 전부터 인구에 회자되었지만, 아무도 그것이 새빨간 거짓말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알아채지 못한 듯하다. 왜냐하면 플레밍이 이야기한 결과가 나오려면 순서가 뒤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1950년대 말의 실험들은 박테리아들이 먼저 군체群體를 형성했을 경우 페니실린은 플레밍이 주장하는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페니실린은 박테리아들 속으로 침투하여 그것들을 파괴할 수 없다. 그 물질은 박테리아의 세포벽을 이루는 성분들이 생산되는 것을 막아 그 벽의 생성에 영향을 끼친다. 그러므로 박테리아들이 먼저 있었고 곰팡이가 나중에 추가된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의 순서가 맞다. 플레밍의 접시에 먼저 곰팡이가 있었어야 한다. 다시 말해 그 접시들은 더럽혀져(오염되어) 있었어야 한다. 플레밍이 그의 실험실에 이미 있었던 오염원에서 황금을 캐내듯이 위대한 발견을 이루었다는 것은 정말 믿기 어려운 일이다. 그의 시대에는 마케팅이라는 말이 없었다. 그러나 플레밍은 마케팅의 달인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 과학을 배반하는 과학(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 전대호 옮김. 해나무 펴냄. 2009) 54쪽 - 56쪽

플레밍은 차분하고 냉정하게 실험을 하는 과학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가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을 발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플레밍의 발견이 노력이 아니라 행운에 의한 것일 뿐이라는 주장을 하였다. 그의 위대한 발견이 단지 행운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깎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지만 실제로 그가 페니실린을 발견한 과정을 살펴보면 행운이 작용한 것은 사실이다. 그 행운들을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그의 배양액을 오염시킨 곰팡이는 아래층 실험실에서 알레르기 백신 제조 연구를 하는데 이용되던 것이었다. 만약 아래층에서 그런 연구를 하지 않았다면 그의 발견은 없었을 것이다.

둘째, 아래층에서 날아온 곰팡이는 페니실리움속에 속하는 곰팡이 중에서도 아주 드문 페니실리움 노타툼(Penicillium notatum) 이었다.

셋째, 휴가 중이었던 플레밍이 배양 용기를 배양기에 넣지 않고 실험대 위에 그대로 놓아 둔 것이 곰팡이의 오염을 가능하게 했다. 배양 용기는 배양기에 넣어두는 것이 상식이며 만일 플레밍이 상식대로 행동했다면 그의 발견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넷째, 그해 여름은 쌀쌀했다. 만약 따뜻했더라면 오염된 곰팡이보다 세균이 더 잘 자랄 것이므로 곰팡이의 항균 효과는 기대할 수 없었다.

다섯째, 페니실린의 효과가 나타난 직후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었다. 그리하여 오염되지 않은 배양 용기에서는 세균들이 잘 자랄 수 있었고 이로 인해 곰팡이의 항균 효과가 쉽게 플레밍의 눈에 띌 수 있었다.

여섯째, 휴가에서 돌아온 플레밍이 즉시 배양 용기를 세척하지 않고 배지에 생긴 곰팡이 반점을 발견한 것이다.

* 현대 의학, 그 위대한 도전의 역사(예병일 지음. 사이어스북스 간. 2004) 95쪽 - 96쪽

페니실린의 발견에 대해 읽다가 흥미로운 부분이 있어 책을 몇 권 찾아보았습니다. 전체의 맥락은 비슷하지만 세세한 부분에서 미묘하게 다른 곳이 있습니다.

첫 책 '의학의 과학적 한계'에서 말하는 두 가지 우연 중 '증식하지 않을 때에도 페니실린의 영향을 받는 희귀한 균주'는 포도상구균이 먼저 자라고 나중에 곰팡이(페니실리움)가 자란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둘째와 세째 책 '현대의학의 역사'와 '이야기 현대약 발견사'에서는 '서늘할 때 곰팡이가 먼저 자라고 그 뒤에 무더워져 포도상구균이 자라면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순서라면 '희귀한 균주'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네번째 책 '과학을 배반하는 과학'은 알려진 것과는 달리 페니실린의 발견과 사용에 플레밍의 역할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플레밍은 포도상구균이 자란 배양접시에 곰팡이가 떨어져 자란 것을 보고 페니실린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는데('의학의 과학전 한계'의 순서) 그것은 불가능하고 반대의 순서('현대의학의 역사'와 '이야기 현대약 발견사'의 순서)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정확한 사실이 무엇인지는 제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두번째 책과 세번째 책에 나오는 플레밍의  여름 휴가 시기도 한 달 정도 차이가 있습니다. 어느 쪽이 맞는 지는 확인하기가 비교적 쉬울 것 같습니다.

첫 책에는 플레밍의 '휴가'에 대한 이야기가 없습니다. 휴가는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잘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또한 서로 성장 조건이 다른 세균과 곰팡이가 모두 잘 자라서, 곰팡이가 만든 페니실린이 세균이 자라는 것을 억제한 조건이 조성된 이유에 대한 설명이 없습니다. 두번째 책의 설명을 보면 그 이유-유달리 서늘했던 날씨-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섯 째 책, '현대 의학, 위대한 도전의 역사'에서는 이런 우연과 행운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1928년이면 지금부터 90여 년 전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아주 유명한 일화인데도 전해오는 이야기가 각각 다릅니다. 과거에 있었던 일을 정확하게 알기는 참 어렵습니다.

처음 올린 날 : 2020-08-02
마지막 고친 날 : 2022-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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